20100807, 서촌 대오서점 ver_1
- 미모의 할머니와 함께 !
시간은 항상 흘러간다. 지금 ‘욘’이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도, 당신이 조금 미래에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초침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변하지 않았던, 않는 ‘무엇’을 찾는 과정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만큼이나 엉뚱한 발상일까. 보이지 않는 사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주름살을 없애려 보톡스를 맞는 것보다, 차라리 웃는 주름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모이터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변하는 흐름 속에서 당당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들을 찾아 그 곳의 현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화사히 웃는 주름의 미학처럼.
‘이번에는 서촌입니다’
응? 서촌? 서촌이 어디지? 부암동인가? 아니다. 서촌은 서울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종로구 옥인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필운동 일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촌은 새로운 문화벨트로 부상하고 있으며, 최근 수년 사이 이곳의 문화예술 공간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는 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우후죽순 들어서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북촌의 한옥마을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촌이다. 서촌은 북촌 한옥마을처럼 전통 한옥들이 늘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별 특색 없는 평범한 골목길이었지만, 변하지 않고 예전의 평범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에서 왠지 모를 끌림을 느꼈다.
‘서촌을 대표하는 곳이 어디야? ’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대뜸 ‘대오서점’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대오서점으로 발을 향했다. 대오서점은 교보문고, 영풍문고처럼 대형서점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를 살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예전 교과서들이 빼곡했고, 당시와 다르게 지금은 촌스럽다 느낄 수도 있는 글씨와 그림으로 디자인 된 오래된 책들이 한 평 남짓 입구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말 수학의 정석은 몇 십년 전에도 있었구나. 징하기도 하지. 정말 그 책은 수학의 정석인걸까? 그저 제목으로 인해 우리가 정석이라 느끼는 것은 아닐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십초 스치고 지나갔다.
대오서점으로 한 발을 딛는 순간 퀴퀴한 책 냄새가 풍겨온다. 내가 내뱉은 첫마디는 ‘아, 책 냄새 좋다’ 이런 소리도 들린다. ‘아 똥마려울 것 같아.’,‘응?’,‘도서관 화장실에 항상 도서관에만 오면 소화가 잘 된다고 써 있잖아. 책 냄새 맡으면 소화가 잘 된대.’아, 나는 이런 솔직한 모이터들이 참 좋다. 대오서점이 서촌을 대표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건축을 공부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방문해 보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다만, 예전에는 분명 서점이었지만 지금은 서점으로 유명한 것 보다는 ‘오래 축적된 시간,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옛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공간, 그를 지키고 있는 사람’ 으로 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또한 그러했고,
발달된 기술사회 속에서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사면서, 세상의 변화의 흐름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해야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여기 서촌의 작은 대오서점에는 변화의 흐름 속에 우뚝 서서 오래된 공간을 지키면서 세상과 소통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우리는 그 곳에 더 이상 책을 사러 가지 않지만, 사람들은 책 이라는 ‘목적’이 아닌 옛 자취와 함께 살아가시는 할머니, ‘사람과 공간’을 만나러 그 곳에 간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늦은 식사를 홀로 하고 계셨다. 한 두 명의 친구만 들어가 ‘할머니 구경 좀 해도 되요?’라고 시작된 방문이 하나 둘 인사를 하면서 아홉 명까지 늘어났으니 당황하실 만도 하고 귀찮아 할 법도 하건만 전혀 스스럼없이 반겨주셨다. 할머니는 그 집으로 시집가셔서 현재까지 정정하게 살고 계셨고, 건물은 100년이 되었다고 하니 가히 서촌의 역사를 함께 한 건물과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했다. 책을 구경하겠다고 하던 우리는 결국 그 아담한 마당에서 주섬주섬 상을 꾸려 할머니와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오랜만에 소꿉놀이 하는 것 같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덩달아 우리도 더욱 즐거웠다.
이번 서촌에 대한 주제가 사실‘대오서점’은 아니었다. 더욱이 대오서점이 서촌을 대표할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촌에 터를 잡고 오랜 시간 살고 계시는 한 지역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남들 다 찍는 풍경 사진 속에 내가 왔다 갔다는‘인증샷’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건강식 사골국, 아무 맛도 없는 듯 밋밋하지만 진한 사골국물의 깊은 맛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특색만을 강조하는 흐름 속에 우리는 어느 순간 더 자극적인 무엇에만 반응하게 되었다. 사실 서촌에서 이러한 것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밍밍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내재된 서촌 구석구석의 깊은 공간의 맛은 분명 자극적이고 새로운 어떤 것에 견주어도 전혀 부족할 것이 없다.
‘변하는 가운데 제 모습을 지키고,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
이를 찾는 ‘모잇’과 ‘모이터’ 그리고 서촌과 대오서점은 이번 토요일 라포르(마음의 유대란 뜻으로 서로 마음이 연결된 상태, 즉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상태)를 충분히 형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추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어떤 책을 고를지 긴장하고 고민하기 때문에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한편, 도서관이나 서점은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라 마음이 안정되면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 된다. 이 두 신경의 균형이 깨지면서 예민한 사람은 변의나 요의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written by 승연
관련 네이버캐스트 링크 -> http://navercast.naver.com/geographic/smalltown/3279
관련 오마이뉴스 링크 -> http://bit.ly/c2MjNm
'MO!T-pho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AUG 21, 홍제동 개미마을 (0) | 2010.08.30 |
---|---|
2010 AUG 14, 황학동 만물시장 (0) | 2010.08.24 |
2010 JUL 31, 남대문 시장 (0) | 2010.08.24 |
2010 JUL 24, 양화대교 (0) | 2010.08.24 |
2010 JUL 10, 이화동 낙산공원 옆 골목길 (0) | 2010.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