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ed by 지정
여느 전통시장처럼 훈훈하고, 구수하고, 북적거리고, 시끌벅적하지도 않고, 요란하게 시장임을 내세우는 커다란 간판조차 없는. 어느 작은 관광지의 등산길 초입같은 후암시장길.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서울의 중심지에 있지만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오래된 주택, 건물들의 흔적.
근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사롭지 않은 예각의 박공지붕들과 섬세한 장식의 철창들이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
아직 서울시 디자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빛바랜 간판들과 소박한 상점들의 외관이 오히려 도도하고 담백하다.
어딜 둘러봐도 빡빡한 서울의 중심에서 이 곳은, 여백이 시장의 여유를 만든다.
굽이 굽이 여기저기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있는 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적막함을 가진 식당들과,
어느새 좁은 골목길 위를 뒤덮고 있는 색다른 트러스구조의 천막 지붕이 또 하나의 켜로 들어가는 듯한 어두움을 제공한다.
그 어두움을 지나 새로 생긴 반듯한 공영주차장과 맞닿아 있는 후암시장의 가장자리, 그 곳이 바로 오늘의 모잇이 펼쳐진 장소이다. 시장이라는 장소에서 기대하는 풍경이 아닌, 범상치 않은 한 상점. 특별한 간판도 없고 내세우는 주력 상품도 없는.
그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진열 상품들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국적과 장르 불문의 어울림이다.
하얀 프레임에 커다란 통유리, 그리고 그에 둘러져 있는 행인을 위한 걸터앉을 장소까지.
여전히 우리는 건축학과 대학생임을 뻔뻔하게 어필하며 한사코 촬영을 거부하시는 주인님을 설득하고,
결국 사진발이 잘받는 예쁜 꽃붉은 색차림으로 나타나주신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발연기를 시작한다.
아주머니의 쑥쓰러운 미소를 담고, 감사하게도 태연하게 카메라 앞을 통과해주시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담고,
이 일대에 잠시 물의를 일으킨 모잇과 우리의 시선들을 담고.
다시 한번 대학생을 사칭하며 분식집으로 들어가 라면 한그릇씩을 비우고 후암시장길을 떠나온다.
어쩜 그렇게 다들 예쁘냐며 넉넉하게 퍼주신 공짜 공기밥에 꾸역꾸역. 부른 배를 두드리고.
written by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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